第1章
내 이름은 엘사, 시칠리아 마피아 대부의 딸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반항적이었던 내가 홧김에 아무 남자에게나 시집갈까 봐 걱정이 컸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는 아예 직접 명령을 내렸다. 새롭게 떠오르는 마리노 가문의 후계자 루카와 약혼하라는 것이었다.
정략결혼이라고 해도 최소한 반지만큼은 마음에 드는 걸로 직접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마피아 가문의 경매회에 참석했다.
피날레의 보석 반지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경매 패들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경매봉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오만한 억양이 밴 여자 목소리가 어렴풋이 뒤쪽에서 날아왔다.
“당신 같은 시골 여자가 감히 나랑 겨루겠다고요? 4억!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꺼져요.”
장내가 순간 잠시 조용해지면서 카메라 셔터가 나직하게 찰칵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금빛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보였다.
여자의 입가에 무심한 미소를 머금은 그 모습은 마치 경매장 전체가 자기만의 무대라는 듯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경매사는 벌써 허둥지둥 경매봉을 내리쳤다.
“4억! 낙찰되셨어요! 소피아 아가씨, 피날레 반지 ‘영원의 별’ 낙찰을 축하드려요!”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속에서 불이 치밀었다.
“입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낙찰을 선언한다고요? 이 판, 룰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소피아가 몸을 돌렸다. 칼날 같은 시선이 내 구두부터 머리까지 위아래로 훑었다.
“룰이요?”
소피아가 코웃음을 쳤다.
“이것 보세요. 저는 마리노 가문 후계자 루카가 제일 아끼는 소피아에요. 여기서는 내가 곧 룰이라고요!”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루카는 바로 내 약혼자의 이름이었다.
이에 나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루카 씨, 당신이 아끼는 여자가 내가 찜한 약혼반지를 가로챘어요. 이 일, 어떻게 할 거예요?”
제1화
아끼는 사람이라는 워딩과 뉘앙스를 보면 그리 깨끗한 관계 같지는 않았다.
만약 루카가 오늘 내게 만족스러운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 약혼은 당장 깨질 수도 있었다.
곧 나는 저장만 해 두고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는 그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나는 차분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말했다.
“루카 씨, 당신이 아끼는 사람이 내가 찜한 약혼반지를 가로챘어요. 이 일, 어떻게 할 거예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루카의 차갑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그게 누구든지 나와 소피아 사이를 남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어요.]
내가 막 이름을 밝히려는데 루카는 이미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수화기 속 통화 종료음을 들으며 나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루카, 이 자식, 약혼녀 번호조차 저장을 안 해 놨다고?’
인파를 뚫고 들리는 소피아의 웃음소리에는 귀에 거슬리는 득의양양함이 실려 있었다.
“멍청한 거 아니에요! 어디서 주워 온 번호로 인연이라도 만들어 보려고 하는 건지. 정말 웃겨 죽겠네요.”
턱을 치켜든 소피아가 손끝으로 느긋하게 머리카락을 말면서 다시 나를 훑어보았다.
“본인 꼴 좀 봐요. 마리노 가문의 유모가 당신보다는 잘 차려입겠어요.”
그러자 곁에 있던 똘마니 몇몇이 참지 못하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늘 명품보다 편안함이 중요하다고 믿어 왔지만, 휘황찬란한 경매품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그런 고집을 알아줄 사람은 전혀 없었다.
나는 입술을 가볍게 다물었지만 가슴속에는 조금씩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도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해요? 참 이상하게 천박하네요. 루카 씨의 안목도 참 남다르고요.”
소피아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경매를 즐길 기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경매사를 향해 몸을 돌려 ‘영원의 별’ 반지를 가리켰다.
“자동 입찰 기능을 켤게요. 저 여자가 얼마를 부르든 내가 두 배를 낼게요.”
그러자 경매사는 겁먹은 눈으로 소피아를 흘끔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저희, 저희 자동 입찰 기능은 VIP 카드 고객님께 우선 제공이 됩니다.”
소피아가 피식 웃으며 가방에서 골드 VIP 카드를 꺼내더니, 탁 소리가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제가 여기서 1년에 쓰는 돈이 기본 수십억이거든요. 당신은요? 당신은 뭘 가지고 나랑 붙을 거예요?”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지갑에서 아무 표시도 없이 은은한 무광 광택만 도는 블랙카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한도 없는 블랙카드에요. 돈은 충분하죠? 아니면 지금 카드 만들고 다시 입찰을 하시던가요.”
주위에서 믿을 수 없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피아의 미소가 서서히 걷히면서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여기는 마리노 가문 구역이에요. 누구든 저 여자 말을 듣는 사람은 이 도시에서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 거예요!”
경매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리면서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손님, 저, 저는 그저 말단 직원일 뿐이에요. 정말 마리노 가문에 밉보일 수는 없어요.”
전 과정을 지켜본 주변 손님들도 나지막한 소리로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두세요. 저 소피아 아가씨는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루카 님이 정말 끔찍이 감싸 주시거든요.”
“지난달에 눈치 없는 놈 하나가 저 아가씨를 건드렸다가, 다음 날 사업이 완전히 끝장났어요.”
“아가씨, 집안에 좀 돈이 있다고 해도 마리노 가문이랑 정면으로 부딪치지는 마세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에요. 얼른 사과하고 소피아 아가씨께 용서를 구하세요.”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두려움 어린 시선 속에서 소피아의 우월감은 절정에 달했다.
곧 소피아는 팔짱을 낀 채 가볍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눈빛에서는 은근한 쾌감이 넘쳐흐르는 듯했다.
“저 사람들 말 들었죠? 지금 무릎 꿇고 큰 소리로 세 번 외쳐요.”
“‘저는 거지새끼예요, 제가 잘못했어요!’ 라고 하면 혹시 알아요? 내가 봐줄지?”
제2화
26년을 살면서 내 앞에서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요. 뭐라고 외치라고요?”
“귀가 먹었어요?”
“‘저는 거지 새끼예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죠?”
소피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풀이하자 내 입꼬리는 차갑게 올라갔다.
“아주 잘 들었어요. 본인 입으로 거지새끼라고 인정했으니 얼른 꺼져요. 마리노 가문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요.”
소피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자기를 가지고 놀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당신, 지금 당신 따위가 감히 나를 놀린 거예요?”
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두르고 내게 달려들었다. 마치 통제를 잃은 닭 한 마리처럼 정말 우스웠다.
시칠리아에서 가문 경호원들에게 10년이나 격투를 배운 내가 저런 허세를 무서워할 리가 없었다.
정확한 옆차기 한 방에 소피아는 그대로 쓰러졌고, 카펫 위에 웅크린 채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일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소피아 아가씨한테 손을 대다니!”
“루카 님이 아시면 분명 토막을 내서 물고기 밥으로 던져 버리실 거야!”
“이제 끝났어. 하느님도 저 여자를 못 구해.”
그런 수군거림에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었다.
마리노 가문이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전부 내 아버지의 지원 덕분이었다.
그랬기에 이 도시에서 나를 두렵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그 블랙카드를 카운터에 내리쳤다.
“말했죠. 저 여자가 얼마를 부르든 두 배를 낸다고요. 반지 바로 포장하세요.”
겁에 질린 경매사는 다리가 풀린 채 떨리는 손으로 내부 승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벨벳 상자에 담긴 약혼반지를 공손히 건넸다.
포장 봉투를 들고 막 나가려는데, 비틀거리며 일어난 소피아가 다시 앞을 막아섰다.
“거기 서세요!”
나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왜요? 격투기 기술 한 번 더 맛보고 싶어서 그래요?”
소피아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경멸 어린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 경매장 출구가 경호원 무리에게 막히더니, 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갑자기 양옆으로 갈라섰다.
열린 통로 끝에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심장이 절로 빨리 뛰었다.
조명이 그 남자의 몸 위에 떨어지며,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체격의 비율을 그려 냈다.
넓은 어깨에 잘록한 허리와 긴 다리, 무엇보다도 윤곽이 뚜렷한 그 얼굴은 마치 조각상처럼 완벽했다.
곧 소피아가 곧장 눈물범벅이 되어 달려가 하소연했다.
“루카! 저 여자가 내 반지를 뺏고 나를 때리기까지 했어...”
그 남자는 바로 내 약혼자였다.
아버지가 내가 이 약혼자를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장담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역시 아빠는 나를 제일 잘 아시네.’
나는 철저한 얼빠였고, 그랬기에 루카는 완벽하게 내 취향에 들어맞았다.
이 얼굴 하나면 조금 전의 무례쯤은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전 엘사라고 해요. 루카 씨 약혼녀죠.”
구경꾼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뭐? 저 여자가 루카 님의 약혼녀라고?”
“약혼녀랑 아끼는 동생이면 당연히 약혼녀가 더 중요하지!”
“글쎄, 루카 님이 누구 편을 드시느냐에 달렸지.”
루카의 차가운 시선이 내게 떨어졌다.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마. 이 혼사는 내 아버지가 멋대로 정한 거야. 나는 동의한 적 없어.”
소피아가 루카에게 바짝 붙어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눈에는 도발이 가득했다.
“그 초라한 꼴로 루카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 구두를 닦을 자격도 없으면서 웃기고 있네요.”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루카 님이 결혼하신다면 당연히 격에 맞는 재벌집 아가씨지. 저런 시골 여자를 눈에 들어 하실 리가!”
“보기만 해도 지저분해. 여기 공기까지 구려지겠어! 소피아 아가씨 손가락 하나만도 못하잖아!”
나는 그저 옷을 조금 수수하게 입었을 뿐, 지저분하다고 할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 입을 거치자, 나는 쓰레기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인간이란 본래 권세에 빌붙고 남의 불행에 돌을 던지는 법이다.
나는 천천히 눈을 들어 경매장 전체를 싸늘하게 훑었다. 내 시선은 마지막에 루카의 얼굴에 멈췄다.
“그렇다면 루카 씨, 돌아가서 당신 아버지께 전하세요. 이 결혼은 할 필요가 없다고요.”
“이유를 물으면 그냥 내가 그냥 루카 씨를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해요.”
제3화
아버지 말로는 이 혼사를 성사시키려고 마리노 어르신이 꽤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행동 때문에 가문 간 협력이 망가졌다는 걸 알면, 그 표정은 정말 볼만할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속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이 멍청이들과 더 얽히기도 귀찮아서 나는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소피아는 먹잇감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다시 내 앞을 막아섰다.
그 뒤에는 마리노 가문의 건장한 무장 경호원 둘이 서 있었고, 허리춤의 검은 권총집이 한쪽 귀퉁이를 드러냈다.
“이 미친 여자가 지금 도망가려는 거예요? 내 반지를 뺏고 나한테 손까지 댔는데, 이 빚은 아직 안 갚았잖아요!”
나는 차갑게 소피아를 흘겨보았다.
“어떻게 갚을 건데요?”
내가 겁을 먹었다고 착각한 소피아가 손을 쳐들더니 내 뺨을 향해 휘둘렀다.
“당연히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지!”
그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소피아의 손목을 붙잡고 반대로 따귀를 후려쳤다.
짝하는 낭랑한 소리와 함께 소피아의 얼굴이 돌아갔다.
곧 소피아는 뺨을 감싸 쥔 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지금 감히...”
“왜 못 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다시 한 대를 후려쳤다.
“만족해?”
연달아 몰아치는 따귀에 소피아의 기세는 완전히 꺾였다.
곧 소피아는 순식간에 눈물을 쏟으며 루카 뒤로 숨었다.
“루카! 저 여자가 나를 때렸어. 꼭 내 편이 되어 줘야 해!”
루카는 소피아를 뒤로 감싸며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음침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 사람을 건드려요? 정말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요.”
루카가 뒤에 선 부하들에게 갱단 수신호를 보냈는데 꽤 은밀하고 위험한 신호였다.
몇 초 만에 장정 몇 명이 동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나는 재빨리 반응하면서 가장 먼저 덤벼든 놈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두 주먹으로 네 손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곧 묵직한 주먹과 발길질이 온몸에 떨어졌고, 극심한 통증에 나는 바닥에 웅크렸다.
경호원 둘이 거칠게 나를 끌어 일으켜 두 사람 앞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루카는 소피아의 벌겋게 부은 뺨을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담담하게 지시했다.
“소피아, 네 마음대로 처리해.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책임질게.”
그 한마디는 소피아에게 무한한 용기를 주었다. 여자는 험악한 표정으로 내게 침을 뱉었다.
“미친 거야? 아까는 기고만장하더니 왜 그래? 다시 한번 그렇게 날뛰어 보지?”
“내 반지를 뺏는 게 그렇게 좋으면 손가락을 부러뜨려 주지. 앞으로 어디에 반지를 끼는지 보자고!”
말이 끝나자 경호원 둘이 나를 강하게 짓누르며 내 손을 억지로 뻗게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루카와 소피아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나한테 감히 이런 짓을 해? 단언컨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곧 소피아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리노 가문은 뉴욕 5대 가문 중 하나야. 이름도 성도 들어본 적 없는 시골 촌뜨기 주제에 우리를 협박해?”
“오늘 나를 건드린 대가가 뭔지 똑똑히 보여줄게!”
말을 마친 소피아는 하이힐 신은 발로 내 손가락을 사정없이 밟았다.
극심한 통증이 순식간에 손가락뼈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주위의 마피아 손님들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시선을 피했지만 아무도 감히 끼어들지 않았다.
“하필 마리노 가문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저 손이 아깝네. 앞으로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밖에서는 참는 게 상책이야.”
나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사랑했고 그 뒤로는 피아노 월드투어 공연도 여러 차례 열었다.
그랬기에 내 두 손은 망가져서는 안 됐고, 끝없는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곧 소피아가 다시 발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내가 잘못했어! 반지를 줄 테니까 내 손은 놔둬!”
복수는 나중에 해도 되지만 손가락은 열 개뿐이었다.
그러나 소피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시 하이힐 굽으로 내 손뼈를 힘껏 짓이겼다. 피비린내가 곧바로 퍼졌다.
“이 미친년! 이제야 잘못한 걸 알았어? 근데 어쩌지? 이미 늦었어! 오늘 내 분이 풀리기 전에는 여기서 나갈 생각 하지 마!”
나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이를 악물고 루카를 돌아보았다.
“루카 씨! 내 신분이 두렵지도 않아요? 저 여자를 이렇게 감싸다가는 분명 후회하게 될 거예요!”
루카가 경멸하듯 웃었다.
“신분? 당신이 무슨 신분인데? 더러운 수단으로 내 아버지를 홀린 장난감 주제에...”
루카의 반응을 본 소피아의 눈에 악의가 더욱 짙어졌다.
“간도 크네. 내 앞에서 루카를 꼬시려고? 손을 부러뜨려 놓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리겠네!”
“안 돼요! 안 돼요!”
바로 그때 가방 속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받으려 했지만 소피아가 한발 앞서 낚아챘다.
화면에 뜬 아버지 이름을 본 소피아는 냉소하며 통화 버튼을 밀었다.
곧바로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엘사, 왜 아직 집에 안 와? 경매 아직 안 끝났어?]
나는 즉시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아빠! 살려줘요! 이 사람들이 내 손을 못 쓰게 만들려고 해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싸늘해졌다.
[뭐라고! 누가!]
소피아가 기고만장하게 수화기에 대고 외쳤다.
“소피아 님이세요! 당신이 낳은 잡종 년이 여기저기 꼬리를 치고 다녀서, 내가 지금 버릇을 고쳐 주는 중이고요!”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 당장 내 딸을 놓아줘! 안 그러면 내가 도착했을 때 너는 태어난 걸 후회하게 될...]
“배짱이 있으면 와 보시던가!”
소피아는 미친 듯이 웃으며 말을 끊더니 내 팔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기다릴게. 먼저 네 딸 손가락을 부러뜨려서 소리로 들려주지!]
[네가 오면 네 손까지 같이 부러뜨려 줄 테니까!]
소피아는 탁하고 전화를 끊더니 내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바람에 휴대폰이 박살이 나면서 부품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고는 장정들에게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라고 지시했다.
5분, 실제로 흐른 시간은 5분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옥에 수십 년 동안 갇힌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낯익은 검은 방탄 세단이 거역할 수 없는 기세를 몰고 경매장 밖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아버지의 검은 트렌치코트에서는 화약과 피 냄새가 감돌았다.
아버지는 음산한 눈빛에 분노를 가득 담고서 곧바로 경매장 문을 밀어젖혔다.
“어디 보자. 누가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나와 내 딸의 손을 부러뜨리겠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