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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밝혀진 아이의 비밀
가문이 몰락하던 날, 사형수에서 고관대작이 된 소꿉친구 서인혁은 면죄의 증표를 손에 들고 무릎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황제 앞에 올라와, 나와의 혼인을 청했다. 첫날밤, 우리는 신혼방에서 밤새 여덟 번이나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불과 몇 달 후, 배가 불러온 몸으로 그에게 차를 올리러 갔다가 서인혁이 곁에서 그를 보좌하는 책사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대감님, 당시 개 같은 심씨 가문의 놈들이 대감님 댁의 가족 백여 명을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복수를 끝내고도 원수의 딸을 구해주고,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신 겁니까?" "괴롭히기 위해서다. 왜 나만 피맺힌 원한을 짊어지고 죽을 만큼 괴로워해야 한단 말이냐? 심연화도 나와 함께 제대로 살지도, 편히 죽지도 못한 채 살게 할 것이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 속에서 나는 예정일보다 일찍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았다. 서인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심씨 가문의 피를 이은 아이는 하나같이 쓸모가 없구나." "너처럼 말이다." 그 후 6년 동안 나는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나기 위해, 서인혁을 죽일 생각을 수없이도 많이 해왔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챕터 (1)
第1章
가문이 몰락하던 날, 사형수에서 고관대작이 된 소꿉친구 서인혁은 면죄의 증표를 손에 들고 무릎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황제 앞에 올라와, 나와의 혼인을 청했다.
첫날밤, 우리는 신혼방에서 밤새 여덟 번이나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불과 몇 달 후, 배가 불러온 몸으로 그에게 차를 올리러 갔다가 서인혁이 곁에서 그를 보좌하는 책사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대감님, 당시 개 같은 심씨 가문의 놈들이 대감님 댁의 가족 백여 명을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복수를 끝내고도 원수의 딸을 구해주고,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신 겁니까?"
"괴롭히기 위해서다. 왜 나만 피맺힌 원한을 짊어지고 죽을 만큼 괴로워해야 한단 말이냐? 심연화도 나와 함께 제대로 살지도, 편히 죽지도 못한 채 살게 할 것이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 속에서 나는 예정일보다 일찍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았다.
서인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심씨 가문의 피를 이은 아이는 하나같이 쓸모가 없구나."
"너처럼 말이다."
그 후 6년 동안 나는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나기 위해, 서인혁을 죽일 생각을 수없이도 많이 해왔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제1화
어느 날, 아들 서태진이 실수로 자단목 상자를 떨어뜨렸다. 서인혁은 그 벌로 서태진을 사당에 무릎을 꿇렸고, 서태진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다시 독이 든 술을 꺼내 들고 미친 사람처럼 그를 찾아가 따지려 했다.
그런데 그의 첩인 기설아가 그의 품에 안겨 웃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만약 심연화가 자신이 목숨 걸고 낳은 아이를 오라버니께서 직접 숨통을 끊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게다가 우리 아이인 태진이를 6년 동안이나 대신 키웠다는 걸 알게 되면 미쳐버리겠지요?"
방 안에서 들려오던 조롱 섞인 대화가 끝나고, 이내 두 사람이 뒤엉켜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제자리에 굳은 채 멍하니 손에 들고 있던 술을 바라보며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서인혁을 죽이고 그 아이를 데리고 떠날 생각만 수없이 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내가 기울인 모든 노력도, 품어온 원한도 모두 철저한 웃음거리였던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는 이미 6년 전에 친아버지인 서인혁의 손에 죽었던 것이다...
온갖 음란한 신음 소리가 문과 창문을 넘어 고스란히 내 귀에 들려왔다.
술병을 쥔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왔고 결국 나는 술병을 놓치고 말았다.
쨍그랑.
술병이 방 문앞에서 산산조각이 났고, 방 안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멈췄다.
두 사람이 방에서 나왔을 때는 모두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기설아는 나를 보더니 얼굴 가득 경박한 기색을 띠었다.
"언니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설마 서방님의 환심이라도 사러 오신 겁니까?"
나는 그녀를 지나쳐 방에서 나오는 서인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겉으로만 점잖은 척하는 위선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웃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슴속 깊이 끓어오르는 증오를 더는 감출 수 없어, 소매 속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 그를 힘껏 찌르려 했다.
그러나 서인혁은 순식간에 내 손에서 단검을 빼앗더니 내 목에 겨눴다.
또 이렇게 되었다. 전에도 매번 그랬듯이, 그를 죽여 복수하려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서인혁의 말대로 나는 제대로 살지도, 편히 죽지도 못했다.
다시 시선이 마주쳤지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서로의 존재 자체가 불쾌하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참으로 난처하고도 민망했다.
그는 나를 뒤로 거칠게 밀쳐내더니, 기설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차갑게 웃었다.
"아이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감히 여기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다니."
말을 마친 그는 깨진 술병 조각들을 무심히 보더니 잠시 멈칫했다.
"태진이를 위해 용서를 빌러 온 것이냐?"
"심연화, 남에게 부탁할 때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느냐?"
‘무슨 태도? 암살에 실패할 때마다 그에게 고문당하며, 그가 바라던 대로 애원하라는 뜻인가?’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6년 1개월 16일 동안, 나는 서인혁을 백서른두 번이나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나의 무능함을 비웃었다.
그리고는 나를 어두운 방으로 끌고 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때까지 고문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좋은 흉터 연고를 가져와, 내가 잠든 사이에 정성스레 약을 발라주곤 했다.
제2화
처음에는 나도 이를 악물고 서인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서인혁, 언젠가 반드시 내 손으로 널 죽이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는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눈을 맞추게 했다.
"어디 한번 해보거라. 네가 날 먼저 죽일지, 아니면 내가 널 먼저 미치게 만들지 두고 보자꾸나."
우리는 그렇게 6년 동안 서로를 괴롭히며 살아왔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황제의 비밀 명령을 받아, 반역이라는 죄목으로 서씨 가문을 몰살한 것을 원망했다.
나 역시 그를 원망했다. 그는 전후 사정도 헤아리지 않고 모든 죄를 심씨 가문에 뒤집어씌운 채 나를 모질게 괴롭혔다.
사실 서태진이 없었다면, 나는 지난 6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외로운 밤이면, 이불을 끌어안은 채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죽음만이 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서태진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이미 메말라버린 마음이었지만 서태진을 놓을 수가 없어 여기까지 버텨온 것이었다.
그 마지막 버팀목마저 사라진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서인혁, 네가 이겼다. 이것이야말로 네가 내게 안긴 가장 깊고 뼈저린 고통이구나.’
나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바닥에 쏟아져 퍼져 나가는 독이 든 술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와 맞설 힘조차 없었다.
서인혁이 내가 또 다시 욕을 퍼부을 것이라 생각하던 그때, 나는 힘없이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
사흘 뒤면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어쩌면 그때 나 자신을 위한 독이 든 술 한 잔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넋이 나간 채 처소로 돌아온 나는 탁자 위의 아직 다듬지 못한 옥패를 보았다.
그것을 집어 들고 만져보자 손끝으로 선명한 무늬가 느껴졌다.
하나하나 모두 내 손으로 직접 새긴 것이었다.
나는 그 옥패를 손수건으로 잘 감싼 뒤, 책장 가장 안쪽에 넣어두었다.
그 옥패는 원래 서태진에게 새해 선물로 주기 위해 몇 달 동안이나 정성스레 다듬던 것이었고, 이제 마지막 손질만 남겨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슴속에 깊은 슬픔이 밀려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옥패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는 송곳으로 조금씩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어찌 됐든 6년 동안 매일같이 함께 지냈기에, 나는 서태진에게 아직 모자간의 정이 남아 있었다.
‘지난 6년간의 모자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 옥패를 마지막 작별 선물로 줘야지.’
하지만 다음 날 해가 질 무렵, 내가 정성껏 다듬은 옥패를 서태진의 허리춤에 달아주었을 때, 그는 옥패를 힐끗 보더니 망설임 없이 떼어냈다.
그리고 발밑의 푸른 돌바닥을 향해 옥패를 내던져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딴 싸구려 옥패는 너무 못생겨서 필요 없습니다!"
내 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태진아, 내가 만들어 준 옥패가 마음에 들지 않느냐?"
서태진은 울음을 터뜨리며 주먹으로 나를 힘껏 내리쳤다.
"제 어머니가 아니잖습니까! 어제 설아 이모가 그러셨습니다, 이모가 진짜 제 어머니라고! 저는 설아 이모가 좋고 당신은 싫습니다!"
서태진은 그렇게 말하며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기설아의 품에 와락 안겼다.
기설아는 몸을 움찔하더니 곁에 서 있는 서인혁을 바라보았는데, 얼굴에는 어딘가 찔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인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기설아를 차가운 눈빛으로 매섭게 쏘아보며 따져 물었다.
"네가 태진이에게 그렇게 말했느냐?"
"아... 아닙니다..."
"오라버니, 태진이가 철이 없어서 아무 말이나 한 겁니다…"
"허."
나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서인혁은 멈칫하더니, 내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지으며 기설아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달랬다.
"괜찮다."
그러고는 서태진의 뒷덜미를 움켜쥐더니, 반은 놀리듯 반은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또 헛소리를 하면 사냥터에 던져 늑대 먹이로 줄 것이다."
그제야 서인혁은 나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웃는 것이냐?"
‘왜 웃냐고?’
필사적으로 감추려 드는, 위선적이고 서투르기 짝이 없는 그의 모습이 우습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무시한 채 못 본 척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제3화
서인혁이 손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 하자, 뒤에서 기설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오라버니..."
"나가거라."
그가 호통을 치는 동안, 나는 방을 나섰다.
서인혁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고, 기설아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도 감히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서태진을 데리고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갔다.
바닥에 흩어진 옥패 조각들을 바라보며, 서인혁은 차가운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굽혀 한 조각을 집어 들고 손아귀에 꽉 쥐었다.
뒤에 서 있던 호위무사가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대감님, 어찌하여 마님께 말씀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때…"
"닥치거라!"
서인혁은 눈을 내리깔며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었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거라."
다시 발걸음을 돌렸을 때, 내 귀에 들려온 것은 바로 이 한마디였다.
그는 나를 보자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평소처럼 모질고 거친 태도로 돌아왔다.
"왜 또 돌아온 것이냐?"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바닥에 흩어진 깨진 옥패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마지막 조각을 주우려 할 때, 서인혁이 한발 앞서 그것을 발로 짓밟았다.
그는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왜? 이제 태진이가 싫어졌느냐? 다시 돌아와 나와 아이라도 만들고 싶은 것이냐?"
그는 비꼬듯 말하더니, 깨진 옥패를 밟은 발에 힘을 주어 짓뭉개버렸다.
"허나 지금 네 몰골을 보니... 태진이 말처럼 정말 못생겼구나…"
희미한 촛불 너머로, 나는 서인혁이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차갑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서인혁이 등 뒤로 움켜쥔 손에서 검붉은 피가 푸른 돌바닥 위에 뚝뚝 떨어지며 붉게 얼룩졌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핏자국을 잠시 바라보았으나, 그의 이상한 행동을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이곳을 떠나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인혁이 여전히 그 깨진 옥패 조각을 밟은 채 발을 치울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안 갈 것이냐?"
나는 정말로 그와 다시 아이를 가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내 침실이었고, 그가 가지 않으면 나는 쉴 수 없었다.
나의 무덤덤한 말투에 서인혁은 잠시 멈칫했다.
"심연화, 예전에 나한테 대들던 그 기세는 다 어디 갔느냐?"
"왜 이렇게 순순히 항복하는 것이냐? 너답지 않게."
그는 여전히 비웃는 표정으로 내 손목을 거칠게 붙잡아 억지로 눈을 맞추게 했다.
나는 웃으며 그의 손가락을 내 손목에서 하나씩 떼어냈다.
"서인혁, 설마 진심으로 나와 아이를 하나 더 만들고 싶은 것이냐?"
나는 기설아가 평소 하던 요염한 몸짓을 흉내 내며 그의 팔을 어루만졌다.
그는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닿은 듯 화들짝 놀라 물러서며 매섭게 소리쳤다.
"심연화, 네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기 전까지는 그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에 손끝 하나 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마치 그 옛날 내게 고백하던 수줍은 소년 같았지만 우리는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한밤중까지 헛구역질을 해댔다.
이튿날, 나는 일찍부터 제사에 올릴 물건들을 준비했다.
심씨 가문은 여전히 대역죄인의 신분이었기에 가문의 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가족들이 처형당하던 날, 나는 가족들의 시신을 하나씩 등에 업고 십 리 길을 걸어 도성 밖 황량한 산을 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나는 가장 아름다운 복숭아나무 아래에 그들을 묻어주었다.
이듬해 3월, 붉은 꽃잎이 흩날릴 때면 그들도 다시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마지막 제물을 보따리에 넣고 있을 때, 서인혁이 밖에서 들이닥쳤다.
그의 뒤로는 시끄럽게 떠드는 서태진이 따라 들어왔다.
방 안 가득한 제사 물품을 보던 서태진은 순식간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는 맨 위에 놓인 호피무늬 신발을 가리켰다.
"이거 가지고 싶습니다."
그것은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조카를 위해 내가 손수 수놓은 것이었다.
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가버린 아이였다.
나는 내가 직접 6년 동안 키운 서태진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안 된다."
나는 차갑게 거절했다.
하지만 서태진은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제멋대로 그것을 집어 들었고, 제물 상당 부분을 발로 밟아 망가뜨렸다.
제4화
"그만하거라!"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서태진이 손에 들고 있던 신발을 억지로 빼앗았다.
"왜 소리 치는 것이냐?"
곁에 서 있던 서인혁이 눈을 내리깐 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네 아들인데, 울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내 아들이라고?"
나는 차갑게 웃었다.
"내 아들은 6년 전에 이미 죽었지 않았느냐?"
순간 서인혁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시선을 피하며 감히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서인혁, 딱 하나만 물어보자꾸나. 6년 전, 죽은 내 아이를 어디로 데려갔느냐?"
그의 눈빛에 언뜻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거의 무너질 듯한 나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잡종이라, 태어나자마자 시체 버리는 곳에 던져버렸다."
그의 뻔뻔함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 버렸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고, 망설임 없이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그 아이도 네 자식이다!"
"아니다!"
그는 곧바로 내 말을 부정했다.
그제야 서인혁은 비로소 감정이 북받친 듯 비웃음을 거두고 눈시울을 붉혔다.
"심연화, 그 아이에게 네 피가 흐르는 이상, 난 평생 그 아이를 내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는 죽어서도 영원히 잡종일 뿐이다."
그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한 자 한 자 내 귀에 박혔고, 오랫동안 쌓여온 추악함을 남김없이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적나라한 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다.
그것은 우리 둘 사이에 가로놓인 오랜 원망과 새로운 원망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아이는 결국 미쳐버린 서인혁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용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가 제정신을 차리고 나면, 아이는 아무 때나 버려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지난 6년 동안 겪은 모든 치욕을 다 씻어내려는 듯이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서인혁이 이미 떠났을 거라 생각했을 때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숙여 내 손목을 잡아당기더니 나와 눈을 맞췄다.
"심연화, 내가 많이 원망스럽느냐?"
"허나 지금 네가 품은 원망은 당시 내가 품었던 원망의 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기운이 다 빠지자 결국 마음마저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나는 싸울 의지마저 잃은 채 오직 죽음만을 바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체념한 채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서인혁, 이제 날 놓거라. 나도 널 놓아줄 테니…"
"올해 겨우 스물넷인데 하얗게 변해버린 나의 머리를 좀 보거라!"
나는 내 자신을 가리켰다. 6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며 내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지금의 나는 그저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에 불과했다.
"난 이제 지쳤으니 제발 더는 나를 괴롭히지 말거라… 제발 부탁이다."
그는 내 손목을 꽉 움켜쥔 채,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어려 있었다.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그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놓았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여전히 모질었다.
"그렇게는 안 된다."
"심연화, 난 평생 널 괴롭히며 살 것이다. 네게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남아 있다면, 날 죽여보거라..."
‘죽이라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서인혁, 그동안 나는 널 백서른세 번이나 죽이려고 했다. 허나 이번에는 죽이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우리 심씨 가문의 기일이니, 난 이제 부모님 곁으로 갈 것이다.’
...
낮의 소란이 지나간 후, 그날 밤 서인혁은 무슨 영문인지 술 냄새를 풍기며 내 방 문 앞에 밤새도록 서 있었다.
나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을 열고 그를 보았을 때는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기둥에 기대있는 그의 눈빛은 흐릿했고, 눈가에는 희미하게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연이야..."
나는 발검음을 멈췄고 정신이 아득해진 순간, 그가 정말 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5화
아주 오래전, 서인혁은 이렇게 내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다정하게 나를 부르곤 했다.
그는 평생 이 호칭을 나에게만 부를 것이라 약속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기설아를 품에 안고, 그녀에게도 몇 번이고 "연이"라고 불렀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서인혁의 입에서 오랜만에 그 호칭이 흘러나오자, 메말라 있던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난 것이 우스웠다.
그 순간, 애써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어릴 적 비 내리던 밤,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산속에서 길을 잃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옷을 벗어 내게 걸쳐 주고, 나를 업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산을 빠져나왔다.
그때 나는 그의 등에 얼굴을 대고 유난히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게 그의 심장 소리였는지, 내 심장 소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혼인한 뒤에도 우리에게는 한때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세 거리나 떨어진 술집까지 달려가 숙수를 찾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과를 만드는 법을 배우곤 했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그의 눈빛에는 결코 꾸며낼 수 없는 진심 어린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는 가을에 피어난 계수나무 꽃을 내 귀 뒤에 꽂아주며 평생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희미한 새벽빛 아래, 나는 마침내 서인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마치 나를 자기 뼛속 깊이 녹여 넣으려는 듯,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연이야, 날 떠나지 말거라..."
그는 술기운을 빌려, 그 고집스럽던 열다섯 살 소년을 대신해 한참을 울었다.
동쪽 하늘에 첫 새벽빛이 떠오를 때쯤에야 그는 서서히 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조금 서려 있을 뿐, 별다른 동요는 없었고 이내 평소의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나를 껴안고 울며 매달리던 사람이 그가 아닌 것 같았다.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이 그저 나 혼자만의 헛된 꿈처럼 느껴졌고, 그가 또다시 모진 조롱을 뱉어낼까 두려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술이 깼으면 당장 꺼지거라. 여기에는 널 반기는 사람이 없다."
그때까지도 서인혁의 얼굴에는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그 말에 그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꺼지라고?"
"심연화, 설마 이 저택 전체가 서씨 가문의 소유라는 걸 잊은 것이냐?"
그는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은근히 무시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니 내가 어디를 가든 내 마음이다. 굳이 여기서 꺼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너겠지."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옅게 웃었다.
"그래, 내가 떠나마."
"심연화!"
그는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내 손목을 붙잡았다. 예전에도 수없이 그랬듯, 꼼짝도 못 하게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생기 없는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나를 거칠게 팽개쳤다.
"참 잘났구나."
지난 6년간 늘 그래왔듯, 그는 이 말을 남긴 채 단호한 뒷모습만 남기고 떠나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이제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도성 외곽의 황량한 산에는 마차 한 대 없이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해마다 늘 그랬다.
서씨 가문의 마차를 타고 가면, 돌아가신 가족들의 혼이 더러워질 것이라고 고집스레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의 묘비 앞에서 두서없이 참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술병의 술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따리 속에서 작은 알약 한 알을 꺼냈다.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서인혁이 했던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죽음이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이 작은 알약 하나면, 나를 이 고통스러운 곳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마지막 술잔에 넣어 녹인 뒤, 단숨에 들이켰다.
그때 멀리서 말 울음소리와 마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낯익으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몇 번이고 들려왔다.
"연이야."
시야가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나는 고개를 젖힌 채 쓰러졌고, 말에서 내린 서인혁이 비틀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서인혁, 난 이제 죽을 것이다. 이제 만족하느냐?"